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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화약 개발한 무신, 최무선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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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선위 작성일17-08-02 14:08 조회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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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국방력 강화 위해 목숨 걸다

 

방산비리 속출하는 지금과 상반된 모습 보인 고려시대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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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무선과학관 

지난 2015년, 국방부는 고려시대 최무선 장군(1325~1395)을 ‘4월 이달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 최무선 장군은 고려말 왜구가 창궐하자 원나라와 명나라에서 비밀에 부쳐졌던 ‘염초제조법’을 각고의 노력 끝에 터득해 1377년 화통도감을 설치하고, 화약과 각종 화기를 제작한 위인이다. 그의 노력으로 인해 한국 무기가 발달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4월을 맞아 최무선 장군의 역사적 이야기를 심도 있게 알아보았다.

 

중국의 군사기밀로 국내 최초 화약을 개발하다

최무선 장군은 국내 최초로 화약을 개발한 위인이다. 그는 중국인 기술자 이원에게서 화약의 주원료인 염초 제조 핵심기술을 알아내고, 숱한 실험을 거쳐 염초를 흙에서 추출하는 데 성공해 마침내 화약 제조 기술을 완성했다. 고려 말기 화약제조법은 오로지 중국만이 가진 첨단 군사기술이자 국가기밀이었다는 사실에 입각했을 때 최무선의 업적이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를 알 수 있다. 최무선은 화통도감을 세워 첨단 화약무기들을 연구 개발화약 개발에 성공한 후, 화약과 화약무기 제조를 정부에 적극 건의하여 1377년 정부 공식기관인 화통도감을 발족시켰다. 이후 최무선의 주도로 화통도감에서는 대장군, 이장군, 화전, 주화 등 20여 가지의 각종 첨단 화약무기를 개발해냈다. 
 

최무선이 화포를 동원하여 대규모 왜구들을 크게 격파한 가장 중요한 전투는 1380년(고려 우왕 6)과 1383년(우왕 9)에 일어났다. 최무선의 노력으로 당시 고려 군대는 화통방사군이라는 화약무기 발사 전문부대를 편성하여 막강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1380년 왜구가 500여 척의 선박을 이끌고 금강 하구의 진포로 쳐들어오자, 최무선은 부원수로 참전하여 화약무기로 무장한 전함을 이끌고 나가 왜구를 크게 무찔렀다.
 

이후 그는 자체 개발한 화약 제조법과 화포 제작기술을 <화약수련법>과 <화포법>으로 편찬했다. 이 책들은 현재 전해지지 않지만, 그가 개발한 화약 제조법과 화포 제작기술은 아들 최해산에게 전수됐다. 최해산은 아버지의 기술을 계승 발전시켜 조선 초기에 각종 화약과 신무기를 개발했다.

 

방산비리가 속출하는 지금, 최무선의 공적 배울 필요 있어

최무선이 개발한 화약은 차후 조선시대에 큰 역할을 했다. <세종실록> 1430년(세종 12) 4월 14일자에는 병조참의 박안신이 임금에게 올린 글이 실려 있다. 이 글에서 박안신은 ‘나라를 위하는 도리는 지난 일을 거울삼아 뒷일을 염려함으로써 오래 편안하기를 도모하는 데 있습니다’라면서 ‘왜적이 크게 배를 몰고 와서 곤남(경남 사천시 곤양면)에 닿았을 때 정지·최무선·나서 등이 병선 10여 척을 거느리고 막아서자, 적들은 저희가 많고 우리는 적어 상대가 안 된다고 흥겨워하며 도전하였습니다. 우리 배들이 분연히 공격하여 화포를 던져 적선을 태워버리자 적들은 도망쳤고 (중략) 그 이후로는 우리 병선에 대항하지 못했으며, 이따금 해변을 침범하였으나 좀도적에 지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바다로 쳐들어 온 대규모 왜구를 불과 10여 척의 우리 수군이 화포를 활용하여 대파했고, 그 후로는 왜적들이 감히 군대를 일으켜 바다로 공격해오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박안신은 “육병(육군) 수십 만이 적을 방어하는 것이 병선 수 척으로 적을 다스리는 것보다 못함은 그 밝은 효험과 큰 경험으로 거울로 삼을 만합니다”라고 결론을 내린다. 박안신의 건의는, 최무선이 발명한 화포의 위력과 아군의 함포 해전 능력의 위대함을 잘 말해준다. 

최무선이 개발한 화포의 위력은 국사편찬위원회의 <신편 한국사>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 책은 일본 수군이 옥포의 서전에서부터 연전연패할 수밖에 없었던 요인의 하나로 '전선과 화력의 열세'를 든다. 책에서는 일본 전함에 대해 ‘선체가 좁고 낮았을 뿐 아니라 매우 취약하여 풍랑을 만나면 곧장 해체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고, 돛대 또한 순풍이 아니면 사용하기 어려운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고 소개한다. 또한, 일본의 전함은 ‘조선의 판옥선과 비교할 경우 마치 완구와 실물의 차이 정도로 비유될 만큼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책은 또한, ‘양측 화력의 우열도 현저하였다. 일본 수군이 전선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경쾌한 유람선이라고 해도 좋을 선박에 조총을 주무기로 한 데 비해 조선 수군의 판옥선은 선체가 높고 크고 육중한데다가 선상에 대구경(大口徑)의 각종 화포를 설치하였다. 그리하여 조선 수군은 원격전(遠隔戰, 거리가 떨어진 전투)에서는 화포를 이용하여 적을 공격하고 근접전에서는 전선으로 적의 전선을 부딪쳐 깨뜨리는 전법을 구사하였다’라고 설명한다. 이순신의 전술을 그대로 소개해주고 있는 듯한 표현이다. 이순신은 먼 거리에서 화포를 쏘아 일본 전선에 불을 지르고, 가까우면 들이박아 부수었다. 지금의 영웅 이순신이 존재할 수 있었던 데에는 화포의 영향이 컸다는 대목이다.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인 박안신은 ‘나라를 위하는 도리는 지난 일을 거울삼아 뒷일을 염려함으로써 오래 편안하기를 도모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힘입어 현재 국방부에서는 최무선을 4월의 인물로 선정하고, 경상북도 영천시는 2012년 4월, 최무선 과학관을 개관했다. 하지만 진정 국가를 위해서는 최무선의 공적을 가슴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 최근 한국군은 방산비리 등의 과오를 저지르며, 군 이미지를 실추하고 있다. 국방부를 비롯한 군 관계자는 국가의 국방력을 위해 중국에서 목숨을 걸고 국가기밀을 빼온 최무선 장군의 업적을 본받기를 바란다.

 

정리 / 이슈메이커 김동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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