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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인물

연예 · 스포츠 | 렛츠런파크 유도단 김재범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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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선위 작성일17-08-02 15:16 조회5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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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이 써내려간 제 2의 인생 메치기 한판

 

화려한 선수 생활 마무리 후 지도자로 후진 양성에 앞장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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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도의 마지막 ‘그랜드슬래머’


운동선수에게 부상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최고의 위치에 있는 선수도 그 자리에 도전장을 내민 선수도 부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나 주요 경기에서 부상의 유무는 환호와 좌절의 순간을 결정짓기도 한다. 이들에게 부상 방지가 실력을 쌓는 것만큼 중요한 이유이다. 그럼에도 운동선수들은 저마다 크거나 작은 부상을 지니고 산다. 대한민국의 간판 유도 선수이자 2012년 런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김재범 코치 역시 거듭된 부상으로 정든 유도복을 벗었다. 유도 선수로는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뤘다는 평가임에도 김 코치에게 매트를 떠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더욱이 지난 해 은퇴를 선언했을 당시 그의 나이가 만 31살에 불과했기에, 그는 물론 대한민국 유도계와 김재범 코치를 응원해준 팬들에게도 유도 영웅과의 작별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김재범 코치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유도계의 간판스타다. 김 코치는 2008 베이징 올림픽 결승에서 독일의 올레 비쇼프 선수에게 아쉽게 금메달을 내줬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고 4년 뒤 런던 올림픽 결승에서 쓰라린 패배를 안긴 올레 비쇼프 선수를 다시금 만나 4년 전 패배를 보란 듯이 설욕하며 런던 하늘에 애국가를 울렸다. 이뿐 아니라 그는  현역 시절 아시안게임(2010년), 세계선수권대회(2010년·2011년), 아시아선수권대회(2008년·2009년·2011년·2012년)를 연이어 석권하며 전기영 감독에 이어 국내선수로는 두 번째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으며, 지금까지도 한국 유도의 마지막 ‘그랜드슬래머’로 남아있다. 화려했던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지도자로서 제 2의 삶에 도전장을 던진 렛츠런파크 유도단 김재범 코치. 불굴의 의지로 세계 유도계를 평정했던 그의 유도 이야기와 은퇴 후 꿈꾸는 그의 인생 2막을 이슈메이커가 함께해 보았다.   

 

Q. 현역 시절 올림픽·세계선수권·아시안게임·아시아선수권에서 모두 금메달을 차지하며 누구나 꿈꾸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했습니다. 이는 코치님께 어떤 의미입니까?


- 유도를 시작한 이후 제 목표에 그랜드슬램이 존재하지는 않았습니다. 현역 시절 작성해온 노트에 매번 이루고자하는 목표를 써내려왔는데 이를 하나씩 지워나가는 과정이 반복되니 어느새 그랜드슬램이라는 큰 그림이 완성됐습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금메달 이후 그랜드슬램을 달성했지만 당시에는 이를 인지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랜드슬램은 저에게 너무나 큰 의미이고 영광이며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Q. 그렇다면 수많은 대회에서 거머쥔 금메달 중 가장 애착이 가는 메달이 있을까요?


- 모든 금메달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를 꼽자면 세계청소년대회에서 딴 첫 번째 금메달이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아시아 주니어 선수권대회 이후 두 번째 참가한 국제 대회에서 금메달을 땄기에 가치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많은 사람이 모르고 있는 사실인데 제가 성인대회에서만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것이 아닙니다. 주니어대회에서도 그랜드슬램을 달성했고, 성인대회와 주니어대회에서 모두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것은 제가 처음이고 이에 대한 발판을 마련한 것이 세계청소년대회 금메달입니다.

 

Q. 본인 유도 인생의 최고의 한판과 최악의 한판이 궁금합니다.

- 최고의 한판을 꼽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 인생의 최악의 한 판은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국제대회에서 이름을 알리고 승승장구할 당시 도복도 제대로 갖추어 입지 않은 가나 국적의 선수와 대결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경기보다 다음 경기에 초점을 맞출 정도로 승리를 자신했지만 이름도 모르는 선수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해 10초 만에 패했습니다. 제 인생에 최악의 한 판이었지만 반대로 이 경기 이후 어떤 경기에서도 자만하지 않고 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경기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Q. 현역 시절 어떤 자세로 경기에 임했으며 선수로서 본인의 최대 강점은 무엇입니까?

- 시합에 나설 때 마다 예배드리는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평소에도 기도를 많이 하는 편인데 ‘시합은 하나의 예배다’라는 마음으로 경기에 나섰기에 평정심도 유지하고 좋은 결과도 이룬 것 같습니다. 선수로서의 제 강점은 아무래도 정신력이 긍정적 마인드입니다. 반면 많은 사람이 제 겉모습과 경기 스타일을 보고 타고난 체력이 큰 장점이라는 평가를 해주시는데 사실 저는 타고난 체력보단 노력으로 체력을 키워왔습니다. 또한 현역 시절 항상 도전을 즐겼고 새로운 동기를 찾고자 했는데 이 역시도 선수생활 중 저의 큰 무기였습니다.

 

Q. 본인이 세운 목표를 달성한 이후 새로운 동기부여를 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 사실 처음부터 동기부여가 쉬웠던 것은 아닙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이후에는 갑작스런 관심과 높아진 수입에 방황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매트에 섰을 때 몸이 너무 망가져서 그 어느 때보다 힘들게 운동했던 기억이 납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런던 올림픽 금메달 이후에는 열흘 뒤 바로 운동을 시작해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차지했습니다. 올림픽 금메달 이후 바로 이어진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제가 처음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끊임없는 도전과 동기부여가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 
 

김재범 코치가 지향하는 참된 지도자의 모습은 기다려주는 지도자


은퇴 후 김재범 코치는 지도자로서 제 2의 인생을 시작했다. 렛츠런파크 유도단에서 지도자로 활동하며 엘리트선수들을 지도하는 것은 물론 최근 자신의 이름을 딴 유도 전문 교육원을 화성 지역에 설립했다. 지금까지 스타 선수들이 생활체육 전문의 유도 교육기관을 운영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태권도와는 달리 주변에서 유도장을 쉽게 찾아볼 수 없고 대중화도 더딘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김재범 코치 이외에도 한 때 대한민국 유도계를 주름잡았던 최민호, 왕기춘, 조준호 등 스타 선수들이 은퇴 이후 전국 각 지역에서 후진 양성과 유도의 대중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Q. 은퇴 이후 자신의 이름을 딴 교육 기관을 운영 중입니다.

 

- 만들어진 선수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고 보람 있지만 어떻게 보면 유도에 처음 입문하는 이들을 교육하고 만들어나가는 과정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국가대표 선수를 비롯한 엘리트 선수들은 어디에선가 지금까지 배우고 성장한 친구들이고 엄연히 말하면 제가 키운 사람은 아닙니다. 반면 제 이름을 걸고 시작한 이곳에서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제가 만든 교육 과정과 노하우로 유도 입문자들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비록 이들이 향후 엘리트 선수로 성장할지 아니면 다른 길을 찾을지는 모르겠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Q. 김재범 유도관의 지향점은 무엇입니까?


- 이곳에서는 무엇보다 예의를 가장 중요시합니다. 경기를 치루는 상대방은 물론 일상생활에서의 예의도 강조합니다. 물론 이곳에서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놀이문화를 접목시키기도 하지만 최우선은 유도 기술과 예의입니다. 학부모 상담 시에도 기타 유아 체육과는 달리 놀이 문화를 가르치는 곳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유도 기술을 중심으로 예의를 갖추고 성숙한 유도문화를 가르치고자 합니다. 또한 김재범 유도관에서는 국내 유도관 최초로 EMS 프로그램을 도입해 기초 체력 향상과 건강관리에도 집중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유명 선수들이나 다른 직업의 전문가들을 초빙해 멘토 수업을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으며 강연을 통해 학부모와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시간도 갖고 있습니다.

 

Q. 김재범 코치는 어떤 지도자가 되길 꿈꾸나요?


- 기다려주는 지도자가 되고 싶습니다. 빠른 시간 안에 성장을 재촉하기보다 배움의 속도가 느리더라도 선수들이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기다려주는 지도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회에서의 성적, 향후 장래성을 섣불리 판단하기보다 멀리 바라보고 선수들이 스스로 캐치하고 몸에 익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지도자가 되겠습니다.

 


Q. 평생을 함께해온 유도, 어떤 매력이 있을까요?


- 유도는 힘이 세다고 잘하는 운동이 아닙니다. 얼마만큼 상대의 중심과 힘을 잘 이용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운동입니다. 쥐가 코끼리를 제압하는 운동입니다. 유능제강(柔能制剛), 유능함이 강함을 제압할 수 있습니다. 유도는 힘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운동이며 경호나 경찰처럼 상대를 때리지 않고 제압할 수 있는 운동입니다. 더불어 유도의 매력은 결과를 아무도 모른다는 겁니다. 방심하면 1초만에도 질 수 있는 경기가 유도입니다.

 

Q. 마지막으로 김재범 코치의 최종 꿈과 이슈메이커 독자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 있을까요?

 

- 유도 선수 김재범이 아닌 지도자 김재범으로서 인생이 시작됐습니다. 과한 욕심을 갖기보다 가족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어쩌면 소박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흔한 말이 가장 지키기 어려운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슈메이커 독자들에게도 전하고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생에 있어 꿈과 소망을 정확히 구분하면 더욱 멋진 삶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해야겠다는 ‘꿈’과 됐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자기 자신에게 한번쯤은 물어보는 시간 가졌으면 합니다.

 

 

김재범 코치는 유도 선수로서 자신의 점수를 스스로 매긴다면 100점 만점에 90점이라고 한다. 10점을 뺀 이유는 남들에게는 거짓말을 할 수 있어도 본인의 부족함 점은 그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김 코치는 ‘노력했는데 안돼서 포기했다’는 말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사람들만이 말할 수 있는 특권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현역 시절 자타공인 유도계의 괴물로 불렸지만, 이는 결코 쉽게 얻어진 타이틀이 아니며 그 누구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의 노력을 해왔기에 괴물 김재범이 탄생한 것이다. 열심히 노력해서 잘 지지 않았던 괴물같은 선수로 기억되길 원한다는 그의 이야기가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유이다.​

취재 / 이슈메이커 김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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